안성 도피안사 묘향실에서 세월을 바라보며 늙음을 생각하다(미디어붓다 2011-10-18)   2011-10-20 (목)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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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도피안사 묘향실에서
세월을 바라보며 늙음을 생각하다
[특별기고] 송암지원 스님의 ‘가을 메시지’
수행자로 살며 체득한 무욕의 경계 잔잔한 감동
 
글쓴이 : 송암지원
얼마전, 안성 도피안사 송암지원 스님<사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하루 뒤 장문의 글이 왔다. “한번 읽어보라”는 말씀과 함께 잔잔히 써내려간 글은 매우 가을스러웠다.
스님도 가을을 타는가! 나고 죽는 것이 무상이지만, 유독 가을은 무상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기는 하다. 지병 당뇨가 있어 언제나 등산화를 신고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시는 스님, 미소가 편안한 스님, “늙어서 우리 안성 도피안사에 와서 살아, 이 대표”라며 기자의 은퇴후를 걱정해주시던 스님이 왜 이런 글을 써보내셨을까. 내년이 환갑이면, 세속에서는 이제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시기라는데 말이다.
스님의 글이 읽을수록 교훈적이다. 아마도 이 글을 보낸 이유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다 진지하고 성찰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살으라는 말씀을 하고 싶어서일 것이라는 지레 짐작을 했다. 그래서 이 글 전편을 그대로 게재한다. 일점일획 고치지 않고 그대로.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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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老年을 맞이하며
Ⅰ. 인생은 고생이지만
1. 지구가 ‘인생학교’라면 난 ‘학생’이다
늙음에 대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잘 늙으려면 젊은 시절부터 잘 살아야 하는데 내 자신을 돌아보면 별로 잘 산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가다듬어 힘닿는 데까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더욱 절실해졌다. 아마, 나이 덕분(?)일 거다. 그러나 앞으로의 여생을 제대로 살아가기란, 아니 잘 늙어가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수 십 년 살아온 생활습관 때문에 여간 독한 결심을 하지 않고는 그 오랜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젊을 때는 안중에도 없던 일이 나이가 듦에 차츰 큰 일로 다가온다. 나이 값, 밥값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늙어 감을 피할 수도 없다. 피할 수 없는 이 일을, 이제 나의 일로 맞이해야 함에 평소 주변의 늙음을 보고 느꼈던 점을 교훈으로 삼으려고 한다. 주변의 선배 노년들이 거울이 되어 준 셈이다.
그리고 내 자신의 신체적 변화도 속속 경각심을 일깨운다. 해서, 그동안 조금씩 노년을 대비해 메모해 놓은 노트를 다시 꺼내 읽고 정리하며 각오를 다진다. 내가 끝까지 나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저 세상이 아닌 이 세상에서 말이다.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더 큰 일을 위해서라도 늙음을 순간순간 적극적으로 맞이해야 하리라. 사전 훈련이 되고 연습이 되도록….
아무쪼록 지구학교를 졸업하는 그 날이 오기 전, 노년의 문턱에 선 나는 내 자신에 대한 정리를 시작해야 한다. 하루하루를 미적거리거나 차일피일 미루면 달라지거나 변화할 게 없다. 남은 시간은 한계가 있고, 습관은 호락호락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이 지구학교에서 나의 선생님은 대단히 훌륭하셨는데, 학생인 내 자질이 미치지 못하고 게을러서 그만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는 일, 가슴 아픈 일이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 기댈 곳이 없다. 망설이며 머뭇거릴 수도 없다. 스승도 계시지 않는 쓸쓸한 세상, 모든 일을 나 혼자 처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내 가슴에는 모범생이 되고 우등생이 되고픈 어린 시절의 열망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건 초발심이다. 그 마음이 평생 나를 사로잡고 있다. 출가 후에 줄곧 잊어본 적이 없는 마음이다. 이제 그걸 다시 찾아내어 동력으로 써야 하리라. 다소 늦은 일이긴 하지만―.
2. 세상의 감독을 받고 감시를 받고 싶은 나의 人生
나이 들어보니, 늙음은 말할 수 없는 불편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점점 깊이 알게 된다. 솔직히 젊어서는 몰랐다. 부처님께서 생로병사가 고통이라고 그토록 강조하셨지만 난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되레 반항했다. 젊은 난 도저히 실감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인생이 무작정 좋기만 했다. 그렇지만 젊은 날은 오래지 않았고, 세월은 쏜 살같이 마구 흘러갔다. 어언 이제 노년의 문턱에 이르고 보니, 아뿔싸, 젊은 경거망동이 어리석음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늙음, 쉽사리 잊어버리고 행동은 굼뜨고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뿐 아니라 곧잘 오해도 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까마득히 잊고 오로지 내 자신만 내세우기 일쑤다. 또 신체적인 여러 한계에 부닥쳐 좌절하기도 한다. 하나 둘이 아니다. 생이 고(苦)라는 사실을, 늙음이 고라는 사실을, 병사가 고라는 사실을, 이 모든 부처님 말씀을, 젊어서는 납득하지 못했지만 이젠 사정이 다르다.
이런 노화현상[老症]을 깊이 관(觀)하여, 진솔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내 자신이 이미 늙었음을, 점점 늙어 감을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늙어 가는 내가, 마치 젊은 것처럼, 또는 늙지 않을 것처럼, 중증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속다짐을 해본다. 더구나 나는 도를 닦는 신분이지 않은가? 또한 늙음이 좋건 싫건 운명적으로 얼싸 안아야 할 때도 되었고…….
따라서 이제 내 자신은 더 바르게 행동하고 더 정직하게 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순전히 나를 위해서다. 나아가 세상에 대한 작은 예의이기도 하고, 나이가 주는 질서에 대한 책임이고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평소 생각과 다짐을 글로 만들어 공개하려고 한다. 세상의 감독과 도반의 감시를 받고 싶어서다. 말하자면 내 스스로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3. 자신이 짓고 받는 人生
인간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아슬아슬 할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런대도 무사히 지나갔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 속에서도 오늘까지 살아온 것은 세상이 자비롭기 때문이다. 세상의 은혜다.
그렇지만 세상의 구조나 내막은 인과다. 인과는 업(業)에 따른다. 설령, 어떤 일을 당했거나 겪었다 해도 자기가 원인을 지어 그 결과를 받은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생들은 자기 얼굴대로 산다. 얼굴은 자신이 지은 업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신체부위이다. 자기 얼굴을 벗어나는 삶은 극히 드물다. 이처럼 자기 인생은 가장 먼저 자기가 안다. 또 자신의 생각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을 살펴도 알 수 있다. 문득 떠오르는 한 생각으로 자신의 앞길을 알게 되고, 무의식중에 내뱉는 말 한 마디로도 앞날을 예감한다.
그럼으로 남 탓을 하거나 세상 탓을 해서는 안 된다. 원인제공과 진행과정과 최종결과, 이 모두를 온통 자신이 차지하고 있고, 배당받아야 할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제부터 남은 삶을 내 의지로 경영하고 내 뜻으로 개선해 보고 싶다.
이런 인간의 삶에는 하나의 분명한 등식이 있다. ‘인생(人生)은 고생(苦生)’이다. 평범한 이 사실은 인간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도무지 예외가 없다. 편한 인생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그럼 왜 굳이 태어나서, 피할 수도 없는 혹독한 인생고생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꺼이꺼이 살아야만 하는가? ‘왜, 하필!’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다. 태어난 생명은 예외 없이 자신의 정신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살다가 죽는다. 설사, 과보를 받는 일이라도 궁극적으로는 정신향상에 맥이 닿아 있다. ‘먹기 위해 산다거나 죽기 위해 산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아니다. 즉, 모든 삶은 참 생명으로의 복귀를 위해서이고, 그 실현을 위해서이다. 참 인간으로의 복귀나 그 실현을 위해 인간은 태어나서 자신의 길을 부단히 가고 있다는 말이다. 삶이 말할 수 없는 고생임에도 불고하고―.
모든 삶은 진실이다. 설령, 선의 길로 가지 못하고 악의 길로 간다고 해도 조금 돌아갈 뿐이지 종국에는 선의 길을 찾아 자신의 성장을 도모한다. 한 치의 어김도 없다. 정신향상이 각자의 태어난 목적이고, 그 본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도 악도 진실을 향한다. 삶은 진실일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알고, 모르고’에 관계없이 인간은 이 일을 위해 꾹 참고 살아간다. 숨 끊어질 때까지…. 아니, 세세생생 성불을 향해, 성불실현을 위해 살아간다. 그럼으로 인간의 삶에는 깊은 뜻이 들어있다. 해서, 온갖 고생을 참아야 할 뿐만 아니라 당당히 맞서야 한다. 참는 삶이 축적되어 노년에 도달하면 달라진다. 도리어 참는 삶을 즐긴다. 가히 달관의 경지다. 참고 사는 인생을 되레 즐길 수 있는 인생단계가 노년이라는 뜻이다. 소위 인생성공을 말한다. 바로 거기에 인생체험의 오랜 숙련이 주는 지혜가 빛을 낸다. 참 인간으로의 복귀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말이고 그 실현이 눈 앞에 증명된다. 이에 노년은 결실기라고 한다.
이것이 참고 살아야 하는 인생의 주된 이유이고, 고생에 내포된 진실이며, 삶의 모양다리다. 결국 인간 삶의 고생은 고생이 아니라는 말이다. 결실기의 노년이 되면 도를 닦지 않아도 이 점을 감지하고 짐작한다. 세월의 무게로 인한 진지함과 선험이 주는 혜택, 노지(老智)나 숙지(宿智)라고나 할까.
그러나 노년이 되기 전, 도를 닦아 진즉부터 이런 뜻을 알면 자신의 인생이 훨씬 더 뛰어날 수 있고, 수월할 수 있을 것이다. 마냥 세월 속에 무작정 노년이 되지 말고 도를 닦으면서 노년을 맞이해야 인생이 더 좋다. 따라서 좀 더 일찍 이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 또는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차이는 사뭇 크다. 거기에 ‘행불행’이나 ‘성인이냐? 범부냐?’ 하는 인생성패가 달렸기 때문이다. 이건 불교신앙의 지향점을 말하고 인간의 공도(公道)가 주는 책무를 말한다.
그럼으로 이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 차이다. 언제 알고 어느 때 받아들이느냐의 시점도 중요하다. 결국, 인간의 마음가짐이 당사자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이른바 운명[業]이 된다. 자기운명은 자기마음이 짓기에.

Ⅱ. 노년의 철학, 자연 그리고 명상
1. 철학이 있는 노년은 존경의 대상이 된다
불경에 ‘머리가 희다고 장로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있다. 무턱대고 절에서 오래 살았다고 대접 받진 못한다. 나 말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불교사상으로 내 인생철학과 삶의 기준을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누가 봐도 흔들림 없는 소신, 굳은 신앙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점점 깊어지는 육체적인 한계[늙음] 앞에서 출가자인 내가 정신력을 발휘할 마지막 기회다. 최종적인 일이 신앙심 강화다. 일반인들에게는 철학이 되겠지만.
2.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차츰 노년이 깊어 갈수록 늙음에 대한 인생철학이 더욱 확고해야 한다. 우선 늙은이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 늙음을 이해해 달라고 주변에 부탁하거나 구걸하거나 통사정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노인기(老人期)가 자신을 바로 할 수 있는 기회고 고치거나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가슴에 새겨야 하리라.
늙음을 핑계로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히 양해를 구하지 말자. “늙으면 소용없어!”, “늙으면 죽어야 해!”하는 식으로 나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내 자신의 정신력 부재나 약화를 늙음 탓으로 돌리지 말자는 것이다. 나의 힘이 닿는 한, 도 닦듯이 늙음에 대해서도 책임감 있게 살자. 사람은 자신을 단속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인간이 못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도 닦는 것’은 단속하고 절제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수행은 참인간이 되는 일이고 그 길이다. 사람의 가치는 늙고 병들어 숨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행함에 있을 것이다. 사람이 허위허위 늙어 가면서도 가장 멋진 일, 위대한 일은 ‘도 닦는 일’이라고 믿는다. 도 닦기 위해서는 하늘에 태어날 복 짓는 일마저도 접자. 마지막 의지는 오로지 도 닦는 수행뿐이다.
3. 노년, 더욱 감사한다
늙음은 손해 보는 일만은 아니다. 젊을 때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젊을 때 잘못한 것을 깨달아 참회도 한다. 나이가 든 만큼 인생의 폭과 깊이가 그렇게 달라진다. 실지로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아찔할 때도 많다. 마치 외나무다리를 건너 듯 아슬아슬하게 살았다. 그렇지만 세상이 보호해 주고 자비로 감싸주어 여태껏 잘살아 왔다.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시중에는 ‘청춘을 젊은이들에게 그냥 주기는 아깝다’는 말이 돈다.
인생은 아름답다.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봐도, 거리를 활보하는 젊음들을 바라봐도, 때로는 솟구치는 감동을 금할 수가 없다. 모든 인생을 뭇 삶을 힘껏 축복하고 싶다. 무한정 감사하고 싶다. 이해타산을 떠난 생면부지의 얼굴을 봐도 산과 들을 봐도 마냥 감사하고 싶다.
늙음, 얼마나 고귀한가? 내 자신과 타인에게 겸손할 수 있고, 세상에 감사할 수 있으니……. 무엇보다 금생을 졸업하면 다음 생에 더 좋은 몸으로 태어날 희망이 가까이 와있고, 그리고 다시 태어날 이 지구, 이 지구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4. 노년, 사람을 만나면 먼저 웃는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노인기에 들어가는 나는 사람을 만나서 처음 건네는 인사는 말이 아닌 웃음이어야 한다. 내 늙은 얼굴주름에 웃음을 더하면 깊은 자비와 사랑의 골짜기가 될 것이다. 만약 내 얼굴주름에 찡그림을 더하면 차마 바라볼 수 없는 흉물이 되고 말 것이다. 부디, 말하기 전에 먼저 웃으리라. 웃음은 노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말, 웅변이다.
5. 노년, 자연 속에서 산다
사람이 늙게 되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은 모든 것을 안아 주고 감싸 준다. 느리다고 둔하다고 내치지 않는다. 숲과 흙은 늙음을 잘 보호해 준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는 늙음의 보호처가 되지 못한다. 사람이 늙으면 설 자리 앉을 자리가 정해져 있고 그것도 제한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늙음이 돌아가 의지하고 안길 곳은 도회지가 아니고 자연이다. 비록 병원이 멀어도 괜찮다. 나고 죽는 사생관(死生觀)만 딱― 서 있으면 병원 열 곳도 부럽지 않는 곳이 자연의 품이다. 자연은 늙음에 몹시 관대하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에는 거짓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여실지견(如實知見)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이고 안락한 자비의 품안인가.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간혹 설법 중에 말한 적도 있다. 만약 서울에 65세 이상의 노인들만 자연으로 돌아가면 우리의 서울이 얼마나 살기 좋을까. 얼마나 쾌적한 공간이 될까. 젊은이들에게 서울을 양보하고 초연히 자연으로 돌아가며, “너희들 돈 벌어 아이들 잘 키워라. 나는 돌아가리라. 저, 자연의 품으로”라고. 현대판 귀거래사를 읊조린다면 아마 서울은 지상의 낙원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든 것이 이곳 도피안사 미타촌(彌陀村: 壽光院)이다. 너무 이상적인가? 아니다. 늙은 내 요람이고 보금자리다.
6. 명상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는 힘을 준다
홀로 가야 하지 않는가. 홀로 갈수 있는 힘을 명상에서 기른다. 자신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다음 생을 준비한다. 여태껏 밖의 일한다고 안의 일을 소홀히 한 삶을 청산하고, 안의 일에 일로매진(一路邁進)하는 것이 명상이다. 이렇게 마음을 정하면 안의 일을 소홀히 할 겨를이 없다. 이미 많이 늦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리라.
마을의 경로당은 자칫 대기소가 될 수 있다. 소일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것도 그렇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정말, 얼마나 남았고 그 언제인도 모르면서…….’
자신의 늙음을 자각한 순간, 여생은 마지막 기회가 된다. 좌고우면 할 겨를이 없다. 노년의 삶은 너무나 벅찬 한 순간 한 순간이다.

Ⅲ. 노년의 생활과 건강
1. 채식위주의 식단과 적당한 식사량
만약, 노부부나 도반이 자연의 품에 안겨 살며, 조그만 텃밭이라도 장만하여 채소나 꽃을 가꾸면 거기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젊은 시절 뭘 했던 불문에 부치고 호미 들고 채소를 가꾸면 채소만 얻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이치를 일깨우고 삶의 깨달음을 전해 준다.
가꾼 채소가 남으면 도회지에 살고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도 나눠준다. 깨끗한 공기와 물, 때를 맞춘 식사시간, 적당한 식사량, 몸소 가꾼 것을 나누는 보시행은 노년의 몸과 마음을 안온하게 할 것이다. 자연에서 얻는 노년의 행복인생, 열반행로이리라. 내가 출가자이지만 때가 되면 모든 소임에서 손을 떼고 자연인이 될 것이다. 저 노부부나 도반처럼 호미 들고 채전을 돌보리라. 사부공동체인 도피안사 수광원의 구성원이 되어 없는 듯이 있게 살아가리라.
2. 가벼운 일, 주로 걷고 맨손체조를 자주한다
텃밭을 가꾸면 많은 이익이 있다. 무엇보다 자연의 이치를 통해 정신적으로 진지해 진다. 거짓이 없는 자연은 항상 진실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거기서 오는 경건한 즐거움은 세간의 쾌락적 기쁨과는 사뭇 다른 차원이다. 자연이 주는 은밀한 열락(悅樂)과 노동이나 운동이 주는 건강을 얻는다.
그러나 주의할 것도 있다. 몸을 아끼지도 말아야 하지만, 일 욕심, 운동 욕심을 내서도 안 된다. 오로지 적절해야 한다. 부족 가운데 만족이 으뜸 노계(老戒)다. 이는 자기성찰의 수행으로만 조절이 가능하다. 낮엔 일하고 걷고 수시로 체조를 한다. 밤엔 창가에 앉아 좌선하고 책을 읽는다. 세간의 일체사를 내려놓고……. 노년의 지혜로서 자신을 다스린다.
3. 글쓰기와 책읽기를 한다
자연 속에 살면서 일기를 쓴다거나 주제를 잡아 수필을 써 보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읽었던 책들, 특히 감명 깊었던 책을 찾아내어 다시 읽어보면 맛이 다를 것이다. 비록 같은 책이고 같은 사람이 읽어도 그렇다. “이 무슨 도리인고?” 인생은 정신의 폭과 깊이에 의해서만 달라진다. 덩달아 세상도 달라진다.
4. 노년, 더욱 경계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노년은 결실기이고 황금기다. 곡식은 결실을 위해 봄과 여름을 지난다. 그러나 결실기의 실패는 모든 실패다. 기회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노년은 뭘 새로 시작하는 때가 아니다. 시작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있는 것을 잘 갈무리고 마무리해야 한다. 사업을 하려거나 집을 사고 땅을 사고 돈을 꿔 줘서도 안 된다. 새론 친구를 갖기도 어렵다. 그럼으로 면밀히 자신을 관찰하여 노년에 일어나는 온갖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 노욕을 부리면 낭패를 본다.
1)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아야 한다. 겸손하게 여생을 산다.
2) 남의 신세를 지지 않는다.
남에게 더 이상 폐를 끼쳐선 안 된다. 막말로 언제 죽을 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남의 신세를 또 지고 또 폐를 끼치려 하는가.
3) 말을 삼가고 듣는 것을 즐겨한다.
입은 찬탄의 문, 진리의 문일 수도 있지만 화근의 문일 수도 있다. 따라서 노년인생은 입에서 나오는 말을 더욱 조심하고 가려야 한다. 입으로 얻는 것도 많지만 잃는 것도 많다. 입으로 가장 크게 잃는 것은 덕망이다. 노년에 덕망을 잃으면 남는 것이 없다.
4) 호오(好惡)의 감정표현을 자제한다.
자신의 감정을 초월해야 한다. 그 가운데서 분위기를 밝게 하는 말과 행동으로 주변을 감싸고 빛나게 한다.
5) 타인의 장점만 본다.
사람에게는 장단점이 있다고 누구나 쉽게 입에 올리지만, 사실 그런 두 가지 대립된 생각은 갖지 말아야 한다. 자기생각일 뿐이다. 노년에는 두 가지 대립을 넘어서야 한다. 거기 안온이 있고 평화가 있다. 오랜 년륜과 경륜의 힘으로 타인의 밝은 점만 볼 수 있어야 한다. 단점은 없어야 한다.
6)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생각에 걸림이 없어야 한다. 걸림 없는 생각에는 장애가 없다. 도무지 어두운 구석이 없다. 해서, 위로가 없어도 위로가 되고, 격려가 없어도 용기가 난다. 긍정의 노년 곁에 있기만 해도.
7) 자신을 싹― 비운다.
대접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뭘 내세우지 않는다. 오해를 풀려고도 하지 않는다. 비로소 원하는 것이 굴러온다. 유리 같은 심성, 맑은 물 같은 심성을 내비칠 때, 필요한 것이 온다. 막힌 것은 뚫리고 굽은 것은 바르게 펴져 사필귀정이 된다.
5. 수시로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늙으면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간다.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서다. 그런 몸은 본능적으로 더 긴장한다. 몸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는 쉬질 못한다. 쉬지 못하면 곧 병이 온다. 그럼으로 잠간이라도 명상을 통해서 몸을 이완시켜 주고, 틈틈이 체조를 해서 몸에 힘을 뺄 일이다. 진정한 쉼은 가만히 놀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아니고 조용한 자아성찰, 명상이다. 몸을 풀어주는 맨손체조다. 중요한 사실은 마음이 쉬어야 몸도 쉰다는 점이다.
6. 어떤 일도 계획하지 않는다
먼저 내 자신의 노년기[시기: 65, 70세, 75세 등]를 정한다. 그 때부터는 탈속한 경지로 산다. 그야말로 유유자적이다. 감히, 금선(金仙)이 될 것이다. 더욱이나 난 본래로 금선의 후손이니까.
그것은 뭘 계획하고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삶을 달게 받아들여 순간순간 감사하게 생각하며 즐겁게 산다. 아무런 부담감 없이 산다는 뜻이다. 그런 나나 노년들을 무사한인(無事閑人)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망발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7. 하던 일은 넘겨준다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 스승과 제자가 있고 선배와 후배가 있다. 바야흐로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물려주라는 이치다. 평소에 준비를 했다가 시점을 잡아 물려준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역사발전이 더디다.
따라서 사람이 나아가고 물러섬은 인간 세상에 매우 중요한 절차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고 해야 한다.
8. 순례나 여행을 다닌다
견문각지(見聞覺知)는 깨달음이다. 순례나 여행은 견문각지다. 노년에 부처님성지를 순례하거나 불적지를 참배한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나 시간을 피하여 새로운 환경이나 자연의 풍광 앞에 조용히 서 본다.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감회가 있을 것이다. 재화(財貨)는 깨달음을 위해 쓰여야 한다. 비로소 밝은 인류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감각과 관능을 따라 사는 삶은 아무리 화려해도 깊어질 수가 없다. 자신을 위로할 수가 없다. 또 늙음을 앞 세워 몸 편한 것이나 화려한 것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난 점점 늙어가도, 아니 숨 멈추는 그 순간까지도 ‘내 생명, 부처님무량공덕생명’임을 관할 것이다. 저, 무소의 뿔처럼―.
9. 병원엘 가지 않는다
난 스스로 내 수명을 조절하고 싶다.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가 되어도 자신이 죽지 않자 단식으로 수명을 단축했다. 나는 병원출입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내 수명조절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스코트는 육신을 핍박하였지만 난 병을 껴안고 내치지 않아서 노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본다.
선사(先師)께서 73세에 입적하셨으니, 내 나이 일흔 세 살을 시점으로 먹는 일을 조절하고 병원출입을 금할 생각을 해 본다. 물론 그 이전에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 때까지 살았을 경우다. 그러나 아직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일이 남아있다.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가 있어서이다. 이 점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한 입장정리가 되면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아마 현 추세로 나가면 인간수명 100세까지는 누구나 살 것 같다. 늙음의 연속적인 불편 속에 100세가 과연 좋기만 한 걸까? 각자 솔직한 심정으로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과학기술문명의 발달로 의술과 신약이 연속 진보하여 인간수명을 끝없이 연장시킨다. 인간수명이 늘어날수록 삶의 목적은 더욱 분명해야 한다. 인간정신의 절정인 ‘중생성숙’과 ‘국토성취’를 위해서만 더 살고 오래 살아야 할 것이다.
세간에서는 농반 진 반으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 세상이 좋다’는 말을 한다. 인간의 자존심을 뺀 말이다. 자존심이 빠진 인간은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의당, 왔으니 가야 하는 게 정한 이치인데. 뭘, 그렇게 가지 않으려고 자존심을 버리고 곁눈질까지 하려 하나?’ 허튼 생각을 하면 내가 나를 이렇게 닦달할 것이다.
10. 최소한의 생활을 한다
더욱 근검, 절약으로 여생을 산다. 내 자신에게 검소해야 하고 절약해야 하는 까닭은 우선 나를 위해서다. 내 자신의 마음을 거칠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 내 마음이 황폐해 지고 몸과 입이 거칠어 진다. 그러나 남에게는 후해야 한다. 어떤 성인도 남에게 인색하고, 절약한 적이 없다.
11. 몸에 좋은 식품이나 약을 취하지 않는다
난 늙어서 건강식품이나 보약을 먹지 않을 것이다. 규칙적인 생활과 절제된 삶이 최상의 건강식품이자 보약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이 아무리 소중해도 허욕이나 과욕을 부리면 안 된다. 설령, 노년에 건강하다고 해도 어린 아이들처럼 줄곧 뛰어다닐 수야 있겠는가? 물론 노년에 마라톤도 할 수 있고, 더 이상의 일도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남은 시간과 노력을 어디에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인생에서…….
12. 꽃이나 나무를 가꾼다
자연에는 이치가 들어 있다. 인간의 이치와 상통한다. 자연의 이치를 깨달으면 인간의 이치도 알게 된다. 텃밭에서 식물을 가꾸면 채소나 꽃만 얻는 것이 아니다. 곧 인생을 찬미할 것이고 노년을 더욱 소중히 여길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삶은 이처럼 늙어서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노년은 인생의 결실기간이고 새로운 준비기간이다. 수행하는 노년은 늙을수록 대접 받는다. 장로(長老)가 된다.

Ⅳ. 노년의 대인관계

1. 젊은 사람이 식사대접을 한다고 하면 흔쾌히 맞이한다
다만, 식사 후에 살그머니 일어나서 얼른 식사비용을 지불한다. 남에게 식사대접 받는 일이 잦으면 고맙다는 생각보다 자칫 뻔뻔스러워지거나 비굴해지기 쉽다. 둘 중 하나다. 분명한 것은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늙어서 남에게 대접 받아선 안 된다. 갚을 날도 없으려니와 이제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은혜 속에 살았는가? 뭘 더 신세를 끼치려고 하는가. 물론 거기엔 경제적 준비가 있어야 하겠지만 이미 준비된 삶인 것으로 보고 하는 말이다. 나는 어쩌다가 청을 받아 강연이나 법문을 나가도 사례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받은 것도 많지만 조금이라도 되돌려 내 앞길을 닦아야 하니까.
노년들이 기부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노년의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여항에 회자된 말이 노골적이긴 해도 맞는 말이다. 노년에 베풀면 더욱 좋다. 무엇보다 외롭지 않다. 노년의 멋이고 덕(德)이다. 사회의 빛이며 낙조의 아름다움이다. 이처럼 자신이 평생 불러 모은 재화를 다시 온 곳[사회]으로 되돌려준다. ‘과연 나의 모습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 이를 악물고서라도 이 결심을 실천해야 하리라.
2. 그러나 얼마의 돈은 있어야 한다
내 자신의 호주머니에 간직한 얼마의 돈은 죽을 때까지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그 돈으로 불사(佛事)와 사회적인 선행을 하려고 한다. 늙어서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일이 되고, 자부심이 생기고 위안이 된다. 노년의 존재감이기도 하다.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넌지시 차비를 쥐어 주고, 만나는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서 얼마의 돈은 꼭 있어야 한다.
노년의 덕행은 자신의 저승길을 닦는 것이고, 자신의 후생을 복되게 하는 이자 높은 저축이고, 온 곳으로 되돌려주는 순환의 도리를 존중하는 일이다. 출가자인 나도 예외는 아니다. 출가자도 복이 있어야 공부도 잘 되고, 불사도 원만하다. 부처님 원력으로 불사가 이루어져도 책임자가 복이 있어야 함을 누구나 안다. 사람은 복으로 산다. 노년의 복은 더욱 절실하다. 어쩌면 인생의 결정적인 복은 노년과 죽음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3. 노쇠와 병약에 맞설 힘, 佛心을 기르자
‘조용히 노년의 자신을 돌아보아 정리하며, 말없이 주변을 바라보는 것으로 역할을 다하고, 자신의 후생을 발원한다.’ 노년기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이처럼 생각하여 실천하고 산다. 도 닦는 일이 된다.
도 닦음이 ‘자신을 아는 일’이라면, 노년을 알기위해서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도는 나이를 떠나서 닦아야 하지만 특히 노년에는 더욱 도와 가까이 해야 한다. 노년이 깊어갈수록 노쇠와 병약에 맞설 힘[佛心]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도(道)―, 그건 늙음과 죽음 앞에 맞설 막강한 힘이다.
인생을 정리하는 노년기에는, 인생에서 돈으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을 더욱 잘 안다. 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바로 곁에 있어도 깨닫지 못하면 소용없듯이 젊은 시절이 좋긴 해도 도와는 멀리 떨어져 산다. 노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도가 더욱 절실해 진다. 세월 덕분이다. 노년이 맞아 누리는 천혜(天惠)다.
정리되지 않는 창고는 쓰레기장이듯이 정리되지 않는 인생도 그렇다. 도 닦는 일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희망[來世를 發願]을 키우는 일이다. 또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보다 옛 친구를 만나 지난 이야기를 나눈다.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향기로운 인품은 어린 시절 벗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의 진실, 인생의 상도(常道)에 어찌 ‘출가, 재가’의 구별이 있을까.
4. 가능한 세간[大處]에 나가지 않는다(山門不出)
늙음도 단계가 있고 정도차이가 있겠지만 몸을 가누기 어려운 단계가 되면 가능한 나다니지 말아야 한다. 긴히 나가야 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고 자가용을 이용하며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나의 선조들은 한 번 산문을 들어서면 죽을 때까지 다시 나가지 않았다. 나에게 보인 삶이다.
5. 앉고 일어설 때 ‘끙끙’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늙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 늙음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아니, 까마득히 모른다. 겨우 짐작만 할 뿐이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노년이 이해 받지 못하는 행동[끙끙]을 반복한다는 것은 나이에 대한 자존심을 잃고, 노년의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된다. ‘끙끙’은 노년의 입에 붙은 습관일 뿐이다. 그 때 젊음들은 이구동성으로 ‘늙으면 으레 저런다’로 치부해 버리고 만다. 자존심 상하지 않은가? 늙어 자존심을 잃으면 인생을 잃는 것이다.
6. 가능하면 아프다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늙음은 혼자 오지 않기 때문이다. 병과 오고 쇠약과 같이 온다. 병약과 노쇠는 노년의 삶이고 일부이다. 이별이 없는 밀착된 벗이다. 세간의 부부보다 더 가까운 관계다. 아무리 싫다 해도 이혼마저도 안 되는 숙명의 벗이라고나 할까.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이 밀착된 벗을 다독거리고 타이르고 추슬러가며 살아야 한다.
신음을 입에 달고 살지 말자. 자존심과 관계되기에…. 결국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닌가. 노년의 진정한 자존심은 후대에겐 교훈이 되고 자신에겐 성숙이 된다. 더욱 중요한 점은 노쇠와 병약은 큰일[죽음]을 성취하는 관건이다. 부처님께서 춘다를 축복한 사실을 우리 어찌 모른다 하랴.
7. 젊을 때의 성질과 습관을 버린다
젊을 때부터 익혔던 습관―, 과음하고 과식하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고 생활하고…… 등등. 끝내 이런 것을 고치거나 개선하지 않으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듣는다. 어느 때보다 자존심을 지켜야 할 노인기에 이 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자신을 면밀하게 돌아보아 반성하여 멈추고 고치는 것이다. 이는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수행을 하는 것이고 반성하여 자신을 가다듬는 일이다. 노년의 실수를 줄이는 것은 오로지 성찰이다. 인생의 성공, 그 바로 메타는 가까운 사람에게 존경받는 것.
인간의 공도(公道)에는 예외도 없고 특권층이나 차별마저도 없다. 출가자라고 해도 그렇다. 절대 봐주는 법이 없다.
8. 묻지 않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는 체 하지 않는다. 잔소리로 들린다. 노인들이 보기에 세상이 금방 끝날 것 같지만 그러나 쉽게 망하지 않는다. 말세라고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망할 세상은 망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 된다. 오히려 노년의 묵묵한 산 같음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다.
9. 젊게 살지 않는다
보기에 따라 인생은 늙기 위해 살고 죽기 위해 산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태어난 존재가 죽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을 담담히 맞이해야 한다. 자신의 변화를 슬퍼하지 않아야 하고 거기에 마음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젊고 늙음은 오직 육체의 일이다. 육신은 늙어도 마음은 젊음 그대로다. 따라서 누구나 마음[욕망]처럼 젊게 살고 싶어한다. 돈이 있으면 성형도 한다. 그러나 겉은 성형이 되지만 속은 성형이 되지 않는다. 의학이 발달하여 속도 갈아 끼우는 성형이 된다 해도 언제인가는 그도 한계를 맞을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일찌감치 늙어 감을 받아들이자. 인간이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만족이 되겠는가? 끝이 있겠는가? 욕망이―.
착각하거나 욕심내면 늙어 주책이 된다. 부디, 늙음을 받아들이자. 그렇지 않으면 분수를 몰라 젊음들의 빈축을 살 것이다. 젊음들에게 교훈이 되기는커녕 웃음거리가 된다. 끝내 밥값도 못한다.
이런 점을 숙지하여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오로지 마음을 몸에 맞추자. 젊은 시절에는 몸을 마음에 맞췄지만 늙어서는 마음을 몸에 맞춰야 한다. 마음을 몸에 잘 맞추면 둘이 아닌 이치도 알게 된다. 놀랍지 않은가? 노년의 삶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도[不二]를 닦고 있으니까. 그러자면 자신의 늙은 몸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매사에 조심하며 욕심 부리지 않아야 한다. 늙음의 욕심을 노욕(老慾)이라고 하여 추물(醜物)로 여긴다.
흔히, 일상에서 조심하여 산다는 것은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도 출퇴근 시간을 비켜서 이용하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난간을 잡고 한 쪽으로 살며시 다닌다. 길 가운데를 다 차지하지 않는다. 매사에 그렇다. 늙으면 더욱 겸손해져야 함을 언제나 어디서나 잊지 말아야 한다. 노년은 후배들에게 거울이 되어야 할 때이기에.
10. 인심을 후하게 쓴다
손님이 집에 선물을 가지고 오면 흔쾌히 받되, 돌아갈 때는 차비를 선물 값보다 더 준다. 혹시 남의 집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신세진 사람에게 명절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노년의 배려는 존장(尊長)의 칭호를 얻는다. 베푸는 일에서다. 과연 세상 사람들이 나를 출가노덕(出家老德)이라고 할까? ‘지금 내가 그런 행을 짓고 있는가?’ 수시로 살펴봐야 하리라.
11. 자주 목욕을 한다
어린 아기에게는 향기가 나고 늙은이에게는 냄새가 난다. 자주 씻고 옷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는다. 늙어가면서 주변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을 제일로 삼는다. 이타행의 근본이 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함은 선행의 바탕이고 삶의 철칙이다.
12. 여럿이서 산다
늙을수록 대중생활을 한다. 실버타운이나 동네에서 이웃들과 자주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남은 나의 거울이다. 혼자 살면 거울이 없게 되고 거울이 없으면 자기를 모르게 된다. 자기성장이 중지된다.
사람이 오래 살아야 할 까닭이 있다면 오로지 자기성숙을 위해서다. 도를 얻기 위해서다. 본래부터 사람은 몹시 귀하기 때문에 귀한 값을 그렇게 해야 한다. 더욱이나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매우 어려우니까.
13.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주변과 시비를 가리거나 남의 흉허물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떠나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남을 대한다. 늙음의 따뜻한 눈, 젊은이들에게는 없는 눈이다. 이제부터 거울 앞에 서서 찾아보자. 나의 따뜻한 눈빛이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 가를―.
14. 과격하면 안 된다
노년에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것은 과격한 언행이다. 나이 값을 못한다고 외면당한다. 화를 벌컥 내거나 사소한 일에 쉽게 짜증을 내면 안 된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림은 당연하고 나아가 자기주장마저도 없이 한다. 내 세울 일도 물리며, 이길 일도 져준다. 이런 수행을 일상에 갖추지 못하면 한 평생의 삶과 인품을 의심받는다. 심지어 존재마저 의심받고 부정된다.
노인과 도인은 같다.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나는 일찍이 道의 문중이지 않은가? 더욱이나 이제 老年이 되지 않았는가?
15.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특히 공적인 자리일수록, 젊은이들에게 양보한다. 오히려 늙음을 미안하게 생각해야 한다. 젊게 산다는 명목을 내세워 자리를 차지하거나 오래 유지하려고 하면 젊은이들 일자리를 뺏는 일이 된다. 늙어 어찌 남의 것을 빼앗는 악덕을 행하겠는가. 젊은 인생들에게 내줘야 하고 돌려줘야 한다. 돈 벌어서 자식 키우고 부모 모시고 살 수 있도록…. 그것이 선배의 도리이다. 노년이 되면 저절로 선배의 자격을 얻는다. 한사코 뿌리치고 싶어도―.
16. 아이에게도 배운다
‘내가 노인이다’하는 생각을 내세우지 않을 것이다. 세 살 난 어린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어서다. 겸허해야 가능한 일이다. 늙음은 살날이 많지 않기에 순간순간 진지할 수 있다. 그 점을 적극 이용해야 노년기에 결실이 크다. 노년은 인생의 완숙기다. 노덕의 광휘(光輝)가 찬란할 수 있다.
“그댄 보지 못했는가. 꺼져가는 촛불의 휘황함을―, 노을이 아름다운 것을―. 수명을 다하는 별이 초신성이 되어 엄청난 빛을 뿜어내는 것을―. 어찌 인간만이 예외일 수 있는가?” 그렇다. 노덕의 광휘를 발휘하자.
17.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젊은 사람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칭찬은 반드시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하고, 즉시 하면 더 좋다. 마음을 다해서―. 노년이 갖고 있는 풍부한 경험과 년륜 등을 모두 기울여서.
18. 건강은 좋아지지 않는다
그 때 그 때 유지될 뿐이다. 따라서 노년의 하루하루는 산다는 말보다 넘긴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육체의 노쇠와 병고를 추슬러 달래가며 넘긴다. 아리랑 고개를 훠이훠이 넘어가듯이.
건강을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젊음은 다시 오지 않는다. 고향으로 떠나는 그 날, 그 순간까지 오로지 달래고 버틴다. 아,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수행인가. 노년은 그래서 더 진지하고 더 뜻 깊다.
19. 각 절에서 노인수행공동체를 만든다
노년에 부부가 함께 절에 들어가 수행을 한다. 출가자도 수광원에 들어간다. 비록 늙어 최소한의 수행이어도 좋다. 아니, 절에서 생활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깊다. 자식들이 “우리 부모님은 양노원이 아닌 절에 도 닦으러 가셨다”고 자랑스레 말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령화의 노인문제가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것이다. 불교가 나서서 인생문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멋진 기여가 된다. 저, 노인수행공동체 수광원(壽光院)처럼―.

Ⅴ. 유언, 임종, 장례에 대하여
-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옛 수행자들은 며칠 길을 떠나도 자신의 방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다.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또 어린 나이에 왕이 됐어도 등극하는 그 날부터 죽을 때까지 하는 일이 자신의 능[무덤]을 만드는 일이다. 왕만의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말들을 들은 지 오래다. 더욱이나 수행자는 어느 때라도 그 일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
1. 유언의 중요성
내 몸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었을 때, 내 말[유언]에 따르고, 유언에 없는 것은 승규(僧規)에 따르고, 그래도 부족한 점은 일반상식에 따라 처리한다.
2. 광덕스님의 환생후신이신 ‘光린포체’를 모신다
선사(先師:광덕스님)께서는 말년에 “다시 와서 새불교운동 하겠다”라고 다짐 두셨다. 선사의 뜻하심[환생]을 받들어, 다시 오실 몸[광덕스님: 光린포체]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준비한 일이『광덕스님시봉일기』시리즈와 이곳 안성 도피안사(到彼岸寺)와 일련의 일들이다. 따라서 내가 창건한 이곳 도피안사와 내가 해오던 모든 일과 내가 사용하던 일체의 물품, 그 모두는 광린포체께 전달되어야 한다. 심지어 찻잔 하나를 살 때도 선사께서 사용하실 것을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찻잔 하나라도 빠짐없이 광린포체께 전해 드리고자 한다.
3. 불광법회의 발심출가자 00스님에게 맡긴다
“00스님은 출가자로서 불교에 대한 보다 깊은 책임을 자담하고 수행하되 광덕스님의 ‘새불교운동’만이 미래 한국불교의 바른 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정진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이 절을 맡아 가람수호와 전법불사를 짓되 내가 수집해 정리한 선사의 여러 자료를 토대로 삼아 주세요. 그리고 광린포체께서 출가하시어 여기로 오실 때, 이 절과 내가 맡긴 모든 것[일과 물건]을 그 분께 드려 ‘새불교운동’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도록 당부합니다.
이 절의 일들을 정리할 때는 ‘수미산 인연’과 ‘유공자’와 의논하여 그들의 협력을 얻으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절과 불광사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년 전에 내가 불광사에 찾아가 이 절을 불광사 기도처로 받을 것을 제안했지요. 그 이유는 선사의 처음 뜻이 그러했기 때문이었어요. 그 후 책임자와 신도대표들이 두어 차례 다녀갔습니다. 그리곤 지금까지 그들은 일절 함구했고, 세월 속에서 자연스레 없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관계가 끝난 것으로 깨끗하게 정리되었습니다. 물론 내 상좌와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4. 임종은 평소 살던 곳에서
혹시 나의 병세가 위중하여 (내 뜻과 관계없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경우, 임종의 기미가 보이면 얼른 집[절]으로 데려가 달라. 이 때 내 몸에 붙이고 있는 모든 의료기기는 떼어내야 한다. 크고 넓고 깨끗한 방, 중앙 조금 높은 곳에 나를 편히 눕혀라. 방바닥의 열기가 내 몸에 닿지 않도록.
나를 아는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 선정 가운데서 임종하는 나의 모습을 통관(洞觀)하라. 염불을 해도 좋다. 염불은 합송으로 하되 일제히 정중하고 장엄한 소리로 하라.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라. 임종을 맞이한 후에도 한동안 계속해라. 그리고 내가 살면서 잘한 일을 아는 대로 차근차근 진지하게 말해 달라. 내가 평소 서원했던 일을 말해 달라. 이 때 나에 대해 각자 알고 있는 것[德行]을 순서대로 분명한 발음으로 한 마디씩 말해도 즐겁겠구나. 주의할 일은 눈물을 흘리거나 슬픈 소리를 짓지 않아야 한다. 그런 뒤에 범종을 울려라.
5. 그 후 10시간은 내 몸에 손을 대지도 말고 옮겨서도 안 된다
내가 완전히 숨을 멈춘 지 10시간은 그대로 두라. 정신이 단계별로 육신을 벗어날 것이다. 정신이 깊이 계발될수록 몸을 이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거듭 말하거니와 임종 후 10시간 안에는 내 몸을 흔들거나 내 얼굴에 눈물을 흘리거나 울음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넋두리나 푸념을 해서도 안 된다. 밝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나를 자유롭게 보내 달라. 남아 있는 사람들 각자의 일[심정]로 나의 길을 막지 말라. 그러고 보니 은근한 음악도 좋겠구나.[보현행원송 등] 기계음보다 육성으로 하면 더욱 좋고.
그 이후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을 가든지 바로 시신을 치우든지 살아있는 사람들 마음대로 해라. 애써 3일장까지 갈 것 있겠나. 요점은 ‘번거롭게 하지 말라’이다. 왔으니 가야하고, 조용히 왔으니 조용히 가야 함은 정한 이치다.
6. 시신[法軀]에 대한 절차
염습은 약해도 좋다. 내가 범어사에서 처음 계를 받을 때[1971년] 절에서 해준 광목장삼을 지금껏 보관해 왔다. 그걸 마지막으로 입고 가려고 한다. 찾아서 내 몸에 입히면 된다. 그건 다시 와서 출가수행자가 되기 위한 나의 다짐이다. 아니, 先師를 뵈올 나의 맹서이다. 난 다음 생에도 선사를 뵙고 선사의 가르침을 따라 살 것이다. 부디, 따로 다비장을 차리지 말고 일반 화장터로 가라. 숨 멈춘 지 10시간이 지나면 어느 때도 좋겠구나.
7. 나의 죽음을 알려 사람을 불러 모으지 말라
혼자 왔지 않은가. 그동안 은혜 속에서 과분하게 잘 살다가 가야할 때는 혼자 조용히 가야 한다고 본다. 그걸 여여하다고 말해도 될까.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번거로움을 싫어한다. 그런데도 머리를 숙이고 주억주억 오는 것은 품앗이다. 자신이 죽었을 때도 오라는 말이지. 난 그런 걸 싫어한다. 고인의 인품에 대한 그리움으로 와야지 기껏 품앗이 정도의 걸음이라면 거절하고 말겠다. 아무쪼록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수고를 좀 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고 과분하다. 그 외의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도 닦을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8. 재는 조촐하고 격식을 갖추어서 정성껏 지내라
유골은 모란동산 ‘미타 15번’에 49재 날 안치해라. 물론 49재를 지내라. 이 때 49재로 <보현행원송>을 공연해도 좋겠구나. 재를 지내는 일은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또 법보시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물을 베풀어라. 그리고 해마다 기일 재도 지내라. 비를 세우려거든 지산스님 비 곁에 자그맣게 세우면 된다. 비문(碑文)은, ‘比丘松菴堂至元和上還生道場’으로 해라.
다음 생에는 佛法을 崇信하는 재가단월을 부모로 의탁하여 보현승족(普賢勝族) 중에 태어나리라. 부모와 가정환경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남아로 태어날 때는 영웅적인 기상을 가질 것이고, 혹 여아로 태어날 때는 聖者의 자질을 가질 것이다. 난 어느 곳에 태어나도 선사를 찾아 갈 것이다. 선사는 나에게 감동이셨기에……. 그 언제나, 그 어디서나―. 이 땅에 다시 와서 출가하여 선사의 환생후신이신 光린포체 모시고 가르침을 받으며, 세세생생 슬하에서 보살도를 닦고 닦아 갈 것이다.
금생에 내가 살아온 삶과 현생의 대중과 시방제불보살이 나의 이 원을 증명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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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갈등과 대통령의 종교’는?(불교닷컴 2011-11-10) 
21세기 화두는 긍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