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당선인 자승스님은…(불교신문 2009-10-24)   2009-10-30 (금)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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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당선인 자승스님이 조계종 중앙종회 제14대 의장으로 활동하던 모습.
 
 
제33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당선된 자승스님은 총무부장과 재무부장 등 총무원의 주요소임을 거치면서 행정적 안목과 식견을 쌓았다. 5선의 중앙종회의원으로 입법활동의 경험도 풍부하다. 무엇보다 제14대 전반기 의장으로 일하면서 탁월한 갈등조정 능력을 인정받았다. 곧 모든 종도들을 아우르면서 종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란 평이다.
 
 
입법 · 행정능력 갖춘 지도자
           
 5선 의원…종회의장, 총무·재무부장 역임
 
 ‘효율적인 종책 집행 적합 인물’로 평가
 
 
총무원장 당선인 자승스님은 1986년 총무원 교무국장으로 중앙종무기관 소임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총무원 재무부장과 총무부장을 지내면서 종무행정의 노하우를 축적했다. 조계종의 입법기구인 중앙종회에 입성한 때는 1992년. 10대 종회의원을 시작으로 14대까지 5차례 역임했다.
 
결국 23년이라는 시간 동안 중앙무대에 몸담으면서 종단의 전체 살림을 다스릴 혜안과 기술을 배양했다는 게 주변 스님들의 중론이다. 스님을 보좌해 총무국장으로 일했던 중앙종회의원 정범스님은 “큰 그림을 제시하고 나면 전문성을 지닌 실무자들에게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라며 “재임 중 결계와 포살제도의 기초 마련을 비롯해 가사의제 통일, 전법회관 건립 등에서 보여준 기획력과 추진력은 지금도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자승스님 측 선거대책위원회는 총무부장과 종회의장을 역임하면서 스님이 두 가지 신조를 견지했다고 전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와 ‘원칙을 버리지는 않는다’가 그것이다. 얄팍한 야합이 아닌 진정한 화합을 원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단적인 예로 자승스님은 총무부장 소임 시절 32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상대 후보였던 정련스님을 찾아 몸을 낮추고 고견을 청했다.
 
유력한 두 스님이 맞붙는 과열선거로 후유증이 심했고 후보 간 감정의 골이 깊으리란 인식이 교계에 파다했기에,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로 여겨졌다. 이후 정련스님이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장에 선출되고 이어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예방하면서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 중앙종회의장으로서도 종단과 동국대의 화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여러 종책모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동국대 이사회에서 모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해법을 찾기 위해 부심했다는 것이다. 스님의 노력은 수년 동안 지속되던 총무원 집행부와 동국대 이사회 간의 갈등이 청산되는 단초로 작용했다.
 
자승스님이 주도해 만들어진 화엄회의 출발은 종단 종책모임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2004년 10월 창립된 화엄회는 다른 종책모임과 달리 중앙종회의원만을 회원으로 하지 않았다. ‘화엄’이란 이름에 걸맞게 본사와 말사, 종단 소임 등을 차별하지 않고 종책 개발과 연구 그리고 실천에 관심이 있는 스님이라면 누구나 받아들였다. 화엄회가 최대 종책모임으로 발돋움하게 된 이유다. 2권의 자료집 발간, 3회의 포럼 개최로 명실상부한 종책모임다운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06년 발간한 종책자료집 <미래불교를 준비한다>는 전국 250여 지방자치단체의 종교인구 통계를 집대성해 지역 및 계층포교에 많은 도움을 제공했다. 중앙종회의원 덕문스님은 “화엄회는 중앙종회를 넘어 모든 중진 스님들이 동참하는 범종단적 단체로 종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며 “화엄회 활동이력은 화합을 지향하는 새로운 총무원 집행부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종무행정 뿐만 아니라 포교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은사인 정대스님 입적 후 2004년 재단법인 은정불교문화진흥원 제2대 이사장에 취임한 자승스님은 ‘인재불사’라는 은사의 유훈을 받들었다. <은정학술총서>의 발간으로 전문불교학자 양성에 힘썼으며, 불교언론사와 신행단체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특히 올해 교계 처음으로 실시한 전국교리경시대회의 성공적 회향으로 청소년 포교에 일대 개가를 올렸다.
 
관악산 연주암 주지 시절엔 하루 5000명에 달하는 등산객들에게 무료로 비빔밥을 공양하는 등 넉넉한 인심을 베풀었다. 1997년 과천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며 시민들의 벗이 됐고 지역신문인 ‘과천 21’도 발행해 주민들의 권익을 대변했다.
 
한국불교의 자비를 이웃 불교국에 꽃피우는 일에도 남다른 열정을 드러냈다. 화엄회는 올해 캄보디아와 미얀마에서 각각 포교하고 있는 로터스월드와 지구촌공생회에 대한 대폭적 지원으로 눈길을 끌었다. 로터스월드가 운영하는 캄보디아 BWC 아동센터에 3억원을 지원하고 공동 운영하기로 했으며, 지구촌공생회가 짓고 있는 미얀마 화엄초등학교에 2억원을 쾌척한 것이다.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 2세들에게 장학금과 생활지원금도 꾸준히 보태고 있다.
 
“한국불교가 세계 속에서 위상이 높아진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다.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 2569호/ 10월28일자]
2009-10-24 오전 9:44:07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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